가정교회의 세 축 가운데 하나는 예배입니다. 목장에서 정이 터치가 되어서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마음이 열리고, 삶공부에서 지가 터치가 되면서 목장 식구들의 그런 삶의 모습이 이해가 되면, 그 다음 예배를 통해서 의가 터치가 되면서 사람은 헌신으로 연결이 됩니다.
휴스턴 서울교회는 설교가 끝나면 헌신을 위해서 앞으로 걸어 나오도록 초청합니다. 그런데 성도님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후 신앙적으로 변화되는 속도는 앞으로 걸어 나오는 이 헌신의 빈도수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종종 발견합니다.
그것이 헌신이 주는 능력인 것 같습니다. 보통 설교를 듣고 ‘좋다. 은혜 받았다.’ 하고 나가면 그냥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면에 설교를 듣고 자기의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구체적으로 고백할 때 그것을 이길 힘이 생깁니다. 또 ‘내가 이렇게 해 보겠다.’라고 구체적으로 결단할 때 설교가 애매한 은혜로 끝나지 않고 나를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담임목사가 되기 전에는 수 없이 헌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늘 느끼는 것은 헌신대에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성령님의 은혜의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단 설교 가운데서 깨달음이 느껴졌을 때, 그것을 가지고 걸어 나가서 헌신대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 일단 마음 자세가 달라집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깨달음과 헌신에 내용을 구체적으로 헌신카드에 기록할 때, 헌신의 마음이 정리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님이 기도해 주시는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기도하는 시간은 순전한 하나님과의 시간입니다. 그런 시간 후에 받는 담임목사님의 기도는 설명할 수 없는 은혜가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교회의 헌신대를 옆에서 비스듬하게 바라보다가 뭔가를 발견하고는 ‘아!’ 하고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헌신대 위에는 수 많은 얼룩들이 있었는데, 그건 오랜 세월동안 반복적으로 성도들이 나와서 헌신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만나며 흘린 눈물 자국들이었습니다. 예배에서 은혜를 체험하고 나와서 하나님과 만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뭔가를 결단했으니 안 변할 수가 없었던 것이고, 그 눈물 자국은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변화의 동력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