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조선에 이어 구한을 지나면서 36년간 일제의 강점기를 보내고, 이어진 한국 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잿더미 속에서 70년이 채 안 되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나라 중 하나로 자랐습니다. 그 기초에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민족정신을 바로 잡아준 기독교의 영향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한국은 원래 유교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가부장적인 사회였고, 양반과 상놈으로 철저하게 구분된 신분 사회였습니다. 그런 정신 속에서 개인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했고, 따라서 장애인, 여성, 그리고 아이들의 지위가 낮았으며, 직업에 따라 어떤 경우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사회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인간 존중의 정신을 심어 주고 실천하게 한 것은 선교사들이었고 그들이 전한 기독교였습니다.
정부가 부패하고 능력도 없었던 탓에 백성이 보살핌을 받지 못하던 시절에, 학교를 세워서 신분에 상관없이 근대 학문을 가르치고, 병원을 세워서 소외 계층들에게 의료의 혜택을 주기 시작한 것도 선교사님들이었습니다. 나중에 일제에 항거해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 독립 후에 나라를 세우는데 기여한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이었던 것을 볼 때 그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유교의 사회질서 속에서 상업과 노동을 천하게 여기던 사회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구한말 한국에 들어왔던 서양인들에게 한국인들은 하나같이 고집스럽고, 화합할 줄 모르고, 일할 줄 모르고 게으르며, 더럽다는 평가를 들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한국인들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민족으로 바꾸어 놓은 그 시작이 기독교 정신이고 선교사님들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선교 활동이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파괴하고 서양문화를 주입하는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들어가지 않은 곳은 대부분 토속 종교와 전통 문화의 영향으로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고, 여자와 어린이가 멸시를 받으며, 교육의 부재로 미래가 없는 곳입니다. 그런 곳은 대부분 정부가 부패했거나 가난해서 최소한의 의료와 민생과 교육의 혜택도 제공하지 못하는 곳입니다.
한국도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자기 나라에서의 편안함을 버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동양의 작은 나라로 찾아와준 선교사님들의 그 수고와 눈물의 빚을 우리 모두는 지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빚을 다 갚을 수는 없더라도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선교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뎌 보는 것도 빚을 갚는 방법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