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큰딸 다은이의 결혼식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시고 여러 모양으로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으로 돌아간 다은이와 사위는 교우들의 사랑과 관심에 무척 고마워했고, VIP인 사돈 어르신 내외분도 많이 감동 받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딸과 사위가 주례를 부탁해서 한편으로는 감사했지만 부담이 더 컸습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인데 어떤 식으로든 신부 아빠가 드러나는 상황을 원치 않았습니다. 결혼식 한시간 전까지만 해도 ‘아빠’로써 느끼는 감정을 감추기가 어려울 것 같았는데, 강대상에 올라가니 직업정신 때문인지 자동으로 ‘목사’ 가 되어 무사히 결혼식을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들러리는 결혼식 때 신랑 신부가 아름답게 빛나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배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랑 신부를 드러내는 섬김입니다. 조연이 주연처럼 행동하면 연극이나 드라마를 망치듯이 좋은 들러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신랑 신부를 드러냅니다. 들러리가 신랑과 신부 보다 덜 중요한 존재는 아닙니다. 모두가 중요하고 필요한 존재이지만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들러리의 기쁨은 신랑과 신부가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 가운데 예수님을 드러내는 들러리입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예수님을 드러내고, 자신의 기쁨 보다 예수님의 기쁨을 더 기뻐합니다. 들러리 덕분에 신랑 신부가 빛나듯, 그리스도인을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고 빛나게 됩니다.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요한복음 3:30)고 했습니다. 요한은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았지만 자신은 주연이 아닌 조연이며 단지 들러리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주연 자리를 탐내는 조연처럼 신랑 신부 자리를 넘보는 들러리가 많은 시대에, 나를 통해 오직 예수님만 빛나게 드러난다면 그것이 우리 인생에 가장 큰 기쁨이 되겠습니다.